사랑으로 아이를 낳고 싶지만, 사랑만으로 키울 수 없다

사랑은 충분했다.
첫째를 낳고, 둘째를 키우며, 나는 인간으로서 내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사랑만으로는 육아가 되지 않는다.

셋째를 꿈꾸지만, 요즘 내 현실은 “시간이 없다,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로 압축된다.
단순히 아이를 더 키우고 싶다는 감성적인 바람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준비된 상태에서 셋째 아이에게도 인간답고 품위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아이 한 명, 최소 3천만 원.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출산 전후 의료비, 육아용품, 교육비, 사교육비, 방과후 돌봄 비용까지 포함하면
아이 한 명을 성인까지 키우는 데 평균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통계가 있다.
이 금액은 단순한 지출이 아닌, 부모의 노동력과 정신력의 투입 비용까지 포함해야 현실적이다.

나는 지금도 두 아이를 키우며, 마트에 가서 가격표를 본다.
교육비와 특별활동비, 치료비를 계산하고, 세 번째 아이의 기저귀와 분유값을 시뮬레이션한다.
그 결과는 항상 같다.
아이를 더 낳는 것은 수학적으로 틀렸다.
하지만, 내 마음은 사랑의 정답을 포기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저출산의 늪에 빠진 나라

  • 2024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 미만
  • OECD 국가 중 최하위
  • 1자녀도 국가 소멸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출산 장려를 외친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들은 말한다.
정책은 들리지만, 피부에 닿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늘 ‘육아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태도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국가 존립의 핵심 요소다.
그런데 그 부담은 왜 오롯이 부모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가?


육아는 감정노동을 넘어 ‘생존 노동’이다

하루 종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따뜻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이의 울음에 밤을 새우고, 낮에는 일과 병행하며 정신을 붙든다.
엄마 혹은 아빠로서 나 자신이 무너질 때가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를 안고 있었던 어느 날,
대지의 중력이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감각을 느꼈다.
마치 내 손에서 아이를 놓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이런 경험을 말로 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육아우울증은 실제하며, 더는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모 한 쌍의 생존 vs 국가의 존속

  • 2명 낳아야 인구 유지
  • 3명 낳아야 미래 성장 가능
  • 하지만 2 + 1 = -1
    아이 셋은 한 명을 고갈시키는 구조가 된다

많은 젊은 부부가 자녀를 1명만 낳는다.
아예 낳지 않는 부부도 많다.
그들의 결정은 매우 합리적이다.
가난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나는 “셋째를 낳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이 보기엔 어리석은 결정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이것이 ‘용기’이자 ‘의지’이며, 진짜 ‘사랑’의 증명이다.


나는 왜 지금 돈을 더 벌어야 하는가

육아는 돈이 든다

  • 방과후 활동비 25만 원
  • 사교육비 평균 월 50~80만 원
  • 식비, 교육비, 문화생활비 등은 해가 갈수록 증가

시간은 없다

  • 체력은 떨어지고
  • 둘째 아이도 벌써 네 살
  • 셋째를 계획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여유가 빠르게 줄어든다

선택은 지금 뿐이다

  • 나중이란 없다
  • 기회는 항상 다시 오지 않는다
  • “지금보다 절실한 나중이란 없다”

결국, 나는 쓰고 또 쓴다

돈을 벌기 위해 밤을 쪼개 글을 쓰고, 영상도 만들고, 블로그를 운영한다.
소득을 다변화하고, 자녀 교육을 위한 작은 투자를 이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애쓴다.

나는 알고 있다.
구글 애드센스에서 몇 만 원이라도 더 벌 수 있다면
그게 셋째 아이의 분유 한 통이 되고, 미술 수업 한 달 등록비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여전히 셋째를 꿈꾼다

사랑은 이길 수 있을까?
현실은 무겁고 냉정하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다시 일어나 아이들을 안는다.
“사랑해, 너희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말한다.
“나는 돈을 더 벌어야 한다.
나는 셋째를 낳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도 지금처럼 사랑하고,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