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콘크리트로 지은 이 집들은 어느새 개인의 신분 증명서가 되었다.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에 담긴 의미는 단순한 위치 파악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아파트 단지의 몇 평형, 몇 층에 사는지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과연 어떻게 평범한 건축 양식인 아파트가 이 나라에서 지위와 안정, 욕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을까? 첫 번째 칼럼에서는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신분의 상징이 되기까지의 역사와 그 이면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기능적 주택에서 지위의 상징으로 변화한 역사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생소한 주거 형태였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 급증 속에 1960년대부터 정부가 주택난 해소를 위해 도입한 새로운 해법이 바로 고층 아파트였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아파트 공화국”의 시대가 열렸다. 특히 1970년 서울에 중산층을 겨냥한 한강맨션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국내 최초로 중앙난방 보일러를 갖춘 이 아파트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편의성을 선보였고, 이를 계기로 아파트가 단순한 서민 주택이 아니라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생활공간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후 1970~8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대규모 단지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아파트는 한국 도시 풍경의 주역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전국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며 이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단독주택 거주자가 더 많았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상황이 역전되어 2019년에 처음으로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를 넘었고 이후 계속 상승하고 있다. 새로운 주택의 80~90%가 아파트로 공급될 정도로, 아파트는 한국인의 대표 주거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과거 지붕 밑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던 “한 지붕 세 가족” 시대는 저물고, 이제 하늘 위 층층이 쌓인 콘크리트 공간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 아파트가 기능적 주택에서 국민 주거의 표준으로 변모한 것이다.
욕망의 심리: 왜 하필 아파트인가?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집이라면 으레 아파트를 떠올릴 정도로 아파트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첫째로 편리함과 안전 측면에서 아파트는 매력적인 주거지였다.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인 만큼 관리와 보안 서비스가 체계적으로 제공된다. 가령 단지 경비원과 CCTV가 있어 치안이 비교적 안전하고, 엘리베이터 한 번이면 무거운 짐도 집 앞까지 운반된다. 수도·난방 등 시설 관리도 용이해 “불편함 없는 생활”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부응했다. 이러한 장점 덕에 한때 _“성냥갑”_이라 불리며 삭막하다고 꺼려지던 아파트는 살다 보니 편리한 공간으로 인식이 바뀌어갔다.
둘째로 경제적 상승 욕구가 아파트 선호를 부추겼다. 아파트는 애초에 값비싼 재화이기에 그 자체로 부와 성공을 상징한다. 실제로 같은 지역에서 동일한 규모라면 아파트 가격이 단독주택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높게 형성된다. 넓은 단지 조경, 현대적인 인테리어, 브랜드 가치 등이 붙으면서 “비싼 집 = 좋은 집”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나아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부동산, 특히 서울 아파트 값은 오르기만 한다는 불패 신화가 생겨났다. 부모 세대는 아파트 한 채 사서 보유하면 자산이 불어나는 경험을 했고, 그 기억은 다음 세대까지 공유되었다. 그러니 많은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곧 “아파트 한 채 마련”을 의미했고, 그것이 가장 확실한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한국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아파트 소유는 곧 성공의 증표가 되었다. 심지어 “부자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파트를 사는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퍼질 만큼, 아파트는 재산 증식과 신분 상승의 욕망을 담은 그릇이 되었다.
셋째로 문화적·사회적 요인도 한몫했다. 아파트 단지는 주거 공간을 넘어 하나의 작은 사회로 기능한다. 생활 편의시설과 학군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곧 좋은 교육환경과 생활환경을 손에 넣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인기 학군 지역의 새 아파트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이 되었다. 또 아파트는 밀집 주거이다 보니 이웃 간 교류가 적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도심의 익명성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은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 문패조차 달지 않은 채 얼굴 모르는 이웃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전통 한옥의 공동체 문화와 대비되는 이러한 사적 공간에 대한 욕구 역시 아파트 문화의 확산을 촉진했다. 한마디로, 아파트는 한국인의 편리함에 대한 욕구, 부에 대한 열망, 사생활 중시 성향까지 모두 충족시켜주는 맞춤형 주거지였던 셈이다.
콘크리트 위에 그려진 계급지도
문제는 아파트가 거의 모두의 선망이 되다 보니, 그 안에서 또 다른 서열과 격차가 생겼다는 점이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보이지 않는 계급지도가 그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가 개인의 사회적 수준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면서, ‘강남 어디 아파트 몇 동 몇 층’ 하는 식의 주소는 곧 그 사람의 계층적 위치로 읽힌다. 실제로 부유층이 몰린 서울 강남권의 대단지 아파트 이름들은 사회적 위세를 상징하는 고유명사처럼 통한다. 반포, 압구정, 대치동 등의 지명은 그곳에 들어선 고급 아파트들과 함께 부와 특권의 대명사가 되었다. 누군가 소개팅에서 “○○아파트 산다”고 말할 때 듣는 사람의 표정이 미묘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강남 안에서도 어느 단지에 사는지에 따라 미묘한 서열의식이 존재하고, 심지어 “원주민 vs 외지인” 식의 구분까지 생긴다. 아파트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학군, 동(棟) 위치, 평형 크기 등에 따라 촘촘한 급이 나뉘는 신분제가 형성된 것이다.
아파트 내부의 층간에도 위아래가 있다. 동일한 동의 같은 구조라도 몇 층에 위치했는지에 따라 웃돈이 붙는다. 채광과 전망이 좋은 이른바 “로열층”은 거래 가격이 높고 거주자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최상층 펜트하우스는 말할 것도 없고, 남향 코너처럼 선호도 높은 향과 위치의 집은 같은 단지 내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또한 한강이 보이는가, 공원이 보이는가 같은 뷰(view)에 따라서도 삶의 질과 자산 가치가 달라진다. “○○ 뷰 맛집” 아파트라는 말이 부동산 광고 문구로 통용될 만큼, 창밖에 펼쳐진 풍경조차 신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겉보기엔 똑같이 생긴 아파트 동들이지만 그 속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로 촘촘히 짜여 있다. 마치 현대판 봉건제처럼, 아파트 단지마다 성곽처럼 둘러싸인 경계를 이루고 내부 주민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이러한 콘크리트 신분사회에서는 당연히 계층 간 교류가 제한된다. 값비싼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학교,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공유하며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지만, 바깥 세상 사람들과 교류할 일은 적어진다. 한 단지 내에서도 비슷한 소득 수준과 생활수준을 가진 이들끼리 어울리기 쉬워지니, 사회적 거품이 형성되는 셈이다. 아이들도 집값 비슷한 동네의 친구들과만 자라나니 계층 간 이해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이렇게 사는 동네가 곧 사람의 수준을 결정하는 분위기에서는, 주거 공간이 사회적 격차를 대물림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어느 아파트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고, 이는 교육·결혼 등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냉혹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높은 빌딩 숲, 다른 나라의 풍경
한국처럼 아파트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라가 또 있을까? 아시아의 다른 높은 인구밀도 국가들을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일본 역시 도시에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를 겪은 이후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그 결과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주택을 사는 것보다 임차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도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기에, 한국처럼 모두가 집을 통한 한몫 벌기를 꿈꾸지 않는다. 또한 일본인은 가능하면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문화도 있어, 도심을 벗어나면 작더라도 자기 땅에 집을 짓고 싶어 한다. 이런 차이들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국만큼 아파트가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싱가포르의 경우 인구 대부분이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아파트(HDB)에 거주한다. 10명 중 8~9명이 아파트 생활을 하는 초고층 사회이지만, 주택을 공공재로 인식하는 정책 덕분에 한국과 분위기가 다르다. 일반 시민들은 국가가 지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거주하고, 일부 여유 있는 층만이 사설 콘도나 주택을 선택한다. 이렇듯 모두가 비슷한 형태의 집에 살다 보니 아파트 자체가 특별한 지위를 주진 않는다. 물론 입지나 최신 시설 등에 따라 선호 단지가 존재하고, 민영 고급 콘도는 부의 과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내 집 마련”이 곧 “투기의 성공”으로 직결되는 한국과는 결이 다르다. 정부의 철저한 주택시장 관리로 투기 열풍이 제한되고, 주거가 사회적 복지의 일부로 여겨지는 측면이 강하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상황이 더욱 다르다. 독일의 주택 자가 보유율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며, 절대 다수가 평생 임대로 사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굳이 무리해서 집을 살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사회 통념상 “집을 안 가졌다고 낮은 사람” 취급을 하지도 않는다. 대도시에 아파트형 공동주택이 많지만, 한국처럼 특정 아파트에 대한 투기적 기대나 신분 상승 욕망이 크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젊은층일수록 유연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필요에 따라 임대주택을 옮겨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집은 어디까지나 사는 곳일 뿐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당연히 아파트의 사회적 위상도 한국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한강변을 따라 빽빽이 늘어선 아파트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대한민국 현대사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산업화 시대 주택난 해결사로 등장한 아파트는 이제 사회적 신분을 증명하는 배지가 되었다. 그 속에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향한 열망, 부를 쌓고픈 욕구, 그리고 남들처럼 잘살고 싶다는 경쟁심이 층층이 쌓여 있다. 아파트는 우리에게 편리함과 안락함을 줬지만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과 불안을 낳았다. 집값 폭등과 부동산 투기로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의 꿈조차 꾸기 어려워졌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은 더더욱 투기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콘크리트 신분’을 둘러싼 이 경쟁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가 아파트를 통해 본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파트를 알면 한국 사회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주거 문화는 우리의 가치관과 구조적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콘크리트 벽 사이에 스민 계층의식과 불안, 그리고 희망의 모습을 제대로 직시할 때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음 물음을 던져야 한다. 과연 모두가 아파트에만 집착하는 현상이 지속 가능한가? 집은 삶의 터전인가, 투자의 수단인가? 또 이 거대한 아파트 공화국에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이번 연재의 다음 칼럼에서는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아파트를 둘러싼 투기 광풍과 정책의 딜레마를 깊이 있게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칼럼에서는 한국인이 그리는 주거의 미래와 가능한 대안들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콘크리트에 새겨진 신분의 그림자를 넘어, 집의 본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