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단지 아파트의 모습.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숲은 한국 부동산 열풍의 상징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가장 안전한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고, 언제 어디서든 부동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안 사면 평생 집 못 산다”는 불안과 주변의 성공담에 자극받아 너도나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패닉 바잉에 뛰어드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렇게 형성된 부동산 열기는 사회 전반을 뒤흔들며, 한국을 아파트에 집착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 밑바탕에 깔린 심리적 불안, 지난 수십 년간 거듭된 투기 열풍의 역사, 그리고 정책 실패와 사회적 부작용을 차례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 아파트 투기가 어떻게 불안 위에 지은 투자가 되었는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불안이 부추긴 투기 심리: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
한국인의 부동산 투자 광풍 뒤에는 “나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깊은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집값이 오를 때 내 집이 없으면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된다는 두려움, 모두가 돈 버는 아파트 시장에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FOMO 심리는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은퇴 후를 대비해 안전자산인 아파트 한 채쯤은 있어야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마땅한 연금이나 사회안전망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노후 대비책으로 “건물주”를 꿈꾸며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은 사는(place to live) 것이 아니라 사는(buy as investment) 것으로 변질되었고,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이런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며 투기적 심리를 키워왔다.
이처럼 아파트를 향한 집단적 열망 뒤에는 사회문화적 압박도 존재한다. “내 집 마련을 못 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집 소유 여부는 개인의 성취와 직결된 듯 여겨진다. 실제로 2030 젊은 층 상당수는 집이 없으면 경제적으로 “패배자” 취급받는 현실에 공감한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의 자가보유율이 낮을수록 월세 부담이 커져 평생 무주택자의 빈곤 위험이 높아진다고 지적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부모 세대는 “땅 사면 안 망한다”며 자녀에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언론은 연일 집값 상승 소식을 전해 불안 심리를 증폭시켰다. 결국 공포와 불안이 한국인을 아파트 투자로 내몬 가장 큰 동력이 되었고, 이는 투기 광풍의 심리적 토양이 되었다.
투기의 역사: 강남 불패 신화와 전국적 부동산 광풍
한국 아파트 투기의 역사는 강남 개발 신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강남 개발로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이 속출하면서 *“부동산만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은 투기의 진앙지로 떠올랐다. 실제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 대상 단지들은 매입자의 절반 이상이 다주택 투기수요로 채워졌다. 2003년 은마아파트의 경우 매입자 중 3주택 이상 보유자 비율이 65%에 달했고, 불과 2년 만에 가격이 5억8천만 원에서 8억 원으로 폭등했다. 이 시기 *“강남 불패”*라는 말이 나왔듯, 좋은 입지의 아파트는 무조건 오른다는 신념이 굳어졌다.
2000년대 중반 강남 재건축 광풍을 시작으로, 부동산 투기는 전국적 현상으로 번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잠시 주춤했던 집값은 2015년 무렵부터 다시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이후 최근까지의 5~6년은 사상 유례없는 부동산 폭등기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거의 더블에 가까운 상승을 보였고, 2021년에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사상 처음 10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경실련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53% 급등하여 역대 정권 중 최고 상승액을 기록했다. 이미 2000년대 초 참여정부 시절에도 5년간 90% 넘는 폭등을 경험한 바 있지만, 최근 상승장은 전국적인 유동성 축제와 결합되며 강남뿐 아니라 수도권·지방 할 것 없이 전방위 거품을 형성했다.
이 2015~2021 부동산 붐의 이면에는 저금리에 풀린 막대한 유동자금과 갭투자 열풍이 있었다. 집값이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속에,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면 앉아서 돈 번다는 속설이 청년부터 은퇴자까지 퍼졌다. 그 결과 과열기에 다수의 주택을 전세 끼고 매입하는 투기적 갭투자가 성행했고, 일시적으로 “영끌하면 누구나 부자가 된다”는 환상이 지배했다. 하지만 이러한 투기 광풍의 후유증은 혹독했다. 2020년대 들어 전세 사기 사태가 사회 문제로 불거진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집값이 정점을 찍고 조정 국면에 들어서자, 갭투자자 중 상당수가 세입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2023년 한 해에만 특별법을 통해 2만5천 명 이상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공식 인정되었을 정도다. 집 한 채 마련하겠다는 세입자들의 꿈이 무너지면서,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여럿 나오는 등 전세 사기는 투기 광풍의 비극적 단면을 드러냈다.
정부 정책의 실패: 일관성 없는 대책과 ‘집값 잡기’ 피로감
거듭된 부동산 투기 붐 속에서 정부 정책은 엇박자와 실패를 반복해 왔다. 역대 정권마다 집값 안정은 최우선 과제였지만, 정책 기조는 일관성을 잃고 롤러코스터를 탔다. 한쪽에서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해 고강도 규제를 내놓고, 다른 쪽에서는 경기부양을 명목으로 규제를 완화하며 풍선효과를 불렀다. 이런 정책 지그재그 속에 시장 참여자들은 혼란에 빠졌고, 결국 투기세력만 전략적으로 움직일 시간을 벌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초기 7개월 동안 무려 7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강남 집값 반드시 잡겠다”며 대출 조이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 등 강수를 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핀셋 규제로 지목된 강남 지역은 규제 전보다 가격이 더 뛰었고 거래도 늘었다. 규제가 집중되지 않은 수도권 외곽과 지방만 거래 절벽으로 침체를 겪었을 뿐, 정작 투기 핵심지는 끄떡없었다. 이전 정부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강력 제재를 가했으나 투기 수요는 편법을 찾아 활개쳤고,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세금을 낮추고 대출한도를 풀어 투기 불씨를 되살렸다. 이렇듯 정권 교체마다 규제와 완화의 추 정책이 반복되면서 시장에는 “이번 정부만 버티면 된다”는 학습효과까지 생겼다. 국민들은 여야 불문하고 나오는 “집값 잡기” 공약에 점점 피로와 불신을 느끼고 있다.
정책 실패의 또 다른 측면은 세금과 대출 정책의 엇박자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폭탄이니 양도소득세 중과 같은 조치는 쏟아졌지만, 정작 실수요 서민에게 도움 될 주택공급 확대나 금융 지원은 뒷북이었다. 한편으로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를 풀고 전세금 반환보증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내놓은 것이 예기치 않게 갭투자를 부추긴 측면도 지적된다. 싸게 돈을 빌려 집을 사놓고 세입자 돈으로 메꾸는 투기 수법이 구조적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정책이 앞뒤가 맞지 않고 현장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면서, 정부의 신뢰도만 추락하고 말았다. *“부동산 정책은 실패한 역사의 반복”*이라는 자조와 함께 시장에서는 정부 발표보다 카더라 통신과 전문가 유튜버의 조언에 더 좌우되는 분위기마저 생겨났다.
벌어진 격차와 사회적 상처: 세대 불평등과 주거 불안
아파트 투기가 만든 사회적 여파는 한국 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선 부동산 자산 보유 여부에 따른 계층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집 한 채로 수억 원을 번 벼락부자들이 등장한 반면, 죽어라 일해도 집 한 칸 장만 못한 벼락거지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부모 찬스 없이 자력으로는 서울에 집 사기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이 청년 세대의 절망으로 번졌고, *“내 집 마련은커녕 결혼·출산도 포기”*하는 N포 세대 현상을 부채질했다.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PIR)는 두 자릿수를 넘나들어, *“숨만 쉬고 10년 이상 돈 모아야 집 산다”*는 탄식이 현실이 되었다. 그 결과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경제적 격차뿐 아니라 정서적 골까지 깊어지고 있다.
세대 갈등과 지역 갈등도 부동산 문제가 악화시킨 부분이다. 비교적 저렴할 때 내 집을 마련해둔 기성세대는 자산이 불어 여유를 얻었지만, 뒤늦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층은 엄청난 진입장벽에 좌절한다. 한쪽에서는 “요즘 젊은 것들은 노력도 안 하고 불평만 한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윗세대가 집값 다 올려놓고 기회도 안 준다”며 불신하는 악순환이다. 지역 면에서도, 부동산 부자들이 밀집한 강남 등지는 교육·인프라가 더 좋아져 특권 구역처럼 여겨지고, 집 한 채 없는 지방 청년은 “탈서울은 곧 가난을 의미”한다고 여길 정도로 인식 격차가 벌어졌다. 아파트 값이 개인의 사회적 위상까지 좌우하는 현실 속에,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씁쓸한 자조가 나온 지 오래다.
무리한 부동산 투자 열풍은 많은 이들의 일상과 인간관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가족, 친구 사이에도 집 문제로 갈등이 생기고, 청약 당첨 로또를 둘러싼 시기와 질투가 번졌다. 심지어 최근 불거진 전세 사기 사태에서는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 수천 명이 평생 모은 돈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앞서 언급했듯 피해자 중 일부는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는데,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의 실패이기도 하다. 또한 집값 폭등으로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어 서민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이사철마다 전세 대란이 반복되는 등 주거 불안정이 일상화되었다. 과도한 부동산 집착이 초래한 투자 중독, 삶의 왜곡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 커다란 비용을 치르게 하고 있다.
해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싱가포르와 독일의 사례
한국과 비슷한 도시국가이면서도 부동산 거품을 비교적 잘 관리해온 싱가포르, 그리고 임대의 나라로 불리며 주거 안정을 이룬 독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의 약 80%가 정부가 공급하는 HDB 공공주택에 거주할 정도로 국가의 주택시장 개입이 강력하다. 정부는 집을 투기 수단이 아닌 거주의 목적으로 한정하기 위해, 신규 분양받은 공공아파트에는 5년 이상 의무거주기간(MOP)을 둬서 바로 전매나 임대를 할 수 없도록 한다. 또한 *추가 인지세(인두세)*를 도입해, 외국인이 싱가포르 주택을 살 때는 매입가의 60%를 세금으로 내야 할 정도로 투기성 수요를 차단하고 있다. 다주택자나 법인 매수에 대해서도 높은 취득세를 부과하여 투기를 억제하고, 필요한 경우 정부가 토지 수용 및 신규 주택 공급을 통해 가격 안정을 도모한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싱가포르는 집값 상승 압력이 있을 때마다 선제 조치를 취해 부동산 거품이 과열되지 않도록 관리해왔다.
독일은 상황이 다르지만 주거의 투기화를 막는 데 성공적인 나라로 손꼽힌다. 독일의 주택시장 특징은 낮은 자가 보유율과 탄탄한 세입자 보호에 있다. 독일의 자가주택 비율은 50% 안팎에 불과한데. 이는 절반 이상이 평생 임차인으로 살아도 큰 불이익이 없는 사회적 여건 때문이다. 법적으로 세입자 권리가 철저히 보장되어 있어,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는 세입자를 함부로 내보낼 수도 없고 임대료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Mietpreisbremse(임대료 상한제) 등 각종 장치로 급격한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장기 임대를 유도하여, 세입자들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게다가 독일은 주택을 사고 팔 때 각종 거래세·양도소득세 부담이 크고, 단기 되팔이의 경우 세금이 더 부과되는 구조여서 한국처럼 단타 매매로 차익을 노리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런 제도적 틀 속에서 집은 투자 상품이기보다는 실수요의 영역에 가깝게 머물러 있었고, 그 덕에 독일의 주요 도시들은 최근까지도 주택 가격이 비교적 완만하게 움직였다. 물론 베를린 등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 논란이 생기자 독일도 추가 대책을 고민 중이지만, 적어도 집 때문에 삶 전체가 휘둘리는 일은 드물다.
싱가포르와 독일 사례는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원칙을 제도화한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각 나라는 자기 여건에 맞는 방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거주 위주의 주택문화를 정착시켰다. 반면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집을 투자의 수단으로 방치했고, 오히려 조장해온 측면이 있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불안 사회, 주거 양극화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늪에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위한 대안을 만들 수는 없을까? 투기의 악순환을 끊고 집을 다시 삶의 터전으로 되돌리는 일,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불안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주거 비전을 향해
아파트 투자 광풍의 밑바탕에는 불안이 있었고, 그 불안은 역사적 경험과 정책 실패를 먹이로 커져왔다. 모두가 아파트에 매달린 채 승자도 패자도 불행한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패배감 어린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태를 직시하고 주거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집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사회적 안전망과 주택 정책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과열된 투기 심리를 잠재우고 모두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제공하려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다음 칼럼에서는 불안에 기반한 부동산 신화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주거의 대안과 비전을 모색해본다. 불안 대신 희망과 신뢰 위에 지은 집, 모두가 함께 꿈꿀 수 있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주거 모습을 그려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