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곧 부(富)가 된 사회, 대물림되는 격차

서울 강남의 고층 아파트 숲을 내려다보면, 수백만 채의 집마다 누군가의 꿈과 좌절이 교차한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지난 세대 동안,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주거를 넘어 한 가정의 부를 정의하는 상징이 됐다. 실제로 한국 가계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신분의 지표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 부의 축적 구조가 부모 세대를 넘어 자녀 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20~30대 등 젊은 층이 물려받은 재산이 사상 처음 12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그 중 아파트·상가 등 건물 자산만 4조원이 넘었고, 다주택 부모가 자녀에게 집을 증여하며 “부의 가족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편승한 이런 증여 열풍으로 인해 청년층 내 격차는 더욱 커졌다. 한 전문가는 “상속·증여로 인한 양극화는 미래 세대의 근로 의욕 저하와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애초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 한 채의 가치를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적 불평등이 자리잡은 것이다.

“금수저”와 “흙수저”, 교육과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현실

1990년대생 직장인 A씨는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자신의 노력이 부모 찬스 앞에서 초라해지는 경험을 했다. 같은 회사 동기는 부모 덕에 일찍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했고, 불과 몇 년 사이에 그 집 값은 A씨가 평생 모아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버렸다. 흔히 ‘흙수저는 금수저를 못 이긴다’는 자조가 현실이 된 셈이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30대 전체 인구 중 주택을 소유한 비율은 겨우 25% 남짓으로, 4명 중 3명은 자기 집이 없다. 웬만한 소득과 노력으로는 집 한 채 갖기 힘들기에, “운 좋게 부모에게 물려받은 20%만이 일찌감치 내 집을 갖는다”는 자조가 청년들 사이에 퍼진다. 교육 열풍과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어도, 결국 태어날 때부터의 자산 격차를 넘기 어렵다는 좌절감이 자리잡고 있다.

강남과 비(非)강남: 도시 공간에 새겨진 계층 격차

한국의 부동산 불평등은 지리적으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흔히 “강남 불패”로 불리는 서울 강남권은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한강 이남과 이북 사이에는 거대한 자산 격차의 강이 흐른다. 실제로 2025년 현재 한강 이남 11개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약 16억7천만원으로, 강북 14개구 평균(약 9억8천만원)보다 무려 7억원 가까이 높다. 중간 가격을 비교해봐도 강남권(12억8천만원)이 강북권(8억4천만원)을 크게 앞서, 서울 내 지역 간 양극화가 역대 최대로 벌어진 상황이다.

이런 공간적 격차는 교육과 삶의 질 차이로도 이어진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은 유명 학군과 사교육 인프라를 끼고 있어 “좋은 아파트 = 좋은 학교”라는 공식마저 받아들여진다. 반면 주택 가격이 낮은 외곽 지역의 청년들은 길게는 몇 시간씩 통근하며 일자리를 찾아 다녀야 하고, 상대적으로 교육·문화 자원에서 소외되곤 한다. 정부 규제로 대출이 막히고 집값은 오르자, 현실적으로 “흙수저 부부들은 수도권 외곽 아파트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집을 사려던 젊은 부부들이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내 집 마련 사다리가 끊겼다” –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

돈 없으면 집 살 생각 말라.” 2030세대 사이에서 이는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2020년 한 부동산 규제로 대출 한도가 줄자, 연봉 8천만원대의 30대조차 서울에 10억짜리 집을 살 길이 막혀버렸다며 청년들은 분노했다. “내 집 마련의 마지막 사다리가 끊겼다”는 절망감, “엄마아빠 돈 없인 내 집 꿈도 못 꾼다”는 자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발했다. 실제 KB은행 조사에서도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서 부모 지원 없이는 꿈꾸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고 한다. ‘벼락거지’(순식간에 거지가 됐다는 뜻)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갈렸다는 박탈감을 대변했다.

이런 현실은 청년들의 삶의 계획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많은 2030 세대가 연애·결혼·출산은커녕 주택 마련부터 엄두가 안 난다며 ‘N포 세대’를 자처한다. 실제로 30대 남성의 약 51%, 여성의 34%가 미혼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많은 이들이 안정된 주거 없이는 결혼을 엄두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성세대와의 갈등도 깊어졌다. 집값 폭등으로 자산을 불린 세대는 “요즘 젊은 것들은 노력 부족”이라 말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노력만으로 집 사던 시절은 지났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 사회)이라는 냉소적인 단어에는, 공정한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체념이 담겨있다.

고립과 생존의 전략, 그리고 틈새의 희망

절망에 빠진 일부 청년들은 아예 포기와 회피의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도시의 비싼 집값과 경쟁에 지쳐 지방이나 해외로 이주를 꿈꾸는 이들, 최소한의 비용으로 혼자 살아가며 미래 계획을 보류하는 “잔혹한 자유”를 선택하는 이들도 늘었다. 사회 참여나 공동체 활동 대신 개인적인 생존에만 몰두하거나, 반대로 SNS 등을 통한 분노 표출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모습도 보인다. 이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정서적 균열과 고립감을 낳고 있다. 한쪽에는 부모 찬스로 ‘앞서 출발’한 승자들이, 다른 쪽에는 시작선에 서보지도 못한 패자들이 생겨나며 보이지 않는 계급 갈등이 깊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평등의 고리를 끊으려는 움직임도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일부 청년들은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며 지역 공동체나 대안적 삶을 모색한다. 아파트 대신 공동체 주택, 협동조합형 주거를 선택해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자원을 공유하는 새로운 실험도 등장했다 (앞선 ③편 참조). 또한 정책 차원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예컨대 경제학자들은 불로소득 환수보유세 강화 등으로 부동산 투기 이익을 줄이고, 동시에 “모두가 집을 가질 수 없다면 세입자의 주거권이라도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부는 청년·신혼부부 대상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주거비 지원을 확대하는 등 격차 완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체감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연대일 것이다. 아파트 한 채가 개인의 인생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저출산 문제나 세대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제는 “부동산 불평등은 모두에게 손해”라는 공감대 아래, 세대와 계층을 넘어 공정한 주거 사다리를 다시 세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부의 세습이 당연시되는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다음 세대 역시 출발선부터 불평등을 짊어진 채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한국 사회가 아파트에 투영된 욕망과 두려움을 직시하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연대로 구조적 불평등을 깬다면, ‘유산으로 물려받은 불평등’ 역시 언젠가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그 변화를 향한 용기와 상상력일 것이다.